HOME 북녘본당 소개 > 함흥교구 > 나남본당

나남본당

평신도 18   성직자 1   수도자 2  
나남본당

나남본당 羅南本堂

1935년 함경북도 부령군 나남읍(咸鏡北道 富寧郡 羅南邑)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함흥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 청진본당으로부터 분할, 창설되어 침머만(F. Zimmermann, 閔)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사목했고, 모르(L. Mohr) 신부가 2대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밀레만(H. Millemann, 南) 신부가 3대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그러나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가 체포되고 잇달아 함흥교구와 덕원면속구의 성직자들이 체포되어 교회에 대한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이 심해지는 가운데 성당을 비롯한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다. 폐쇄 직전까지 인근지역에 8개의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분도통사(2009년 분도출판사, 675쪽)
프리돌리노 신부는 현재 사목 지역 두 곳을 담당하고 있다. 한 곳은 인구 20만의 신흥 산업도시 나진·웅기 지역이며 다른 한 곳은 나남지역이다. 남쪽으로 성진군에 이르며 네 개 군에 힘차게 발전을 거듭하는 나남의 인구는 50만 명에 육박한다.

플리돌리노 신부는 중심가에 있던 옛 일본인 상점에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차렸다. 창문에는 유리 대신 일본식 발이 달려 있었다. 나남은 그 이후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젊은 사제들이 오는 지역이 되었다. 그들은 여기서 한국어와 약간의 일본어도 배울 수 있었다. 다고베르트 엥크 신부는 덕원 수도원 재정 담당 신부가 되기 전에 나남에 있었으며, 온화하고 건실한 호노라토 밀레만 신부가 유일하게 사목 경험을 한 곳도 나남이었다. 이소 샤이빌러 신부는 나남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1941년에도 나남에 있던 이소 신부는 사제관을 조금 편안하게 보수하기 시작했다. 티모테오 비털리 신부는 1945년 나남에서 일본의 패망을 겪었으며 보름 동안 소련군의 포로고 갇혀 있으면서 가진 것을 다 잃었다. 살해된 비트마로 파렌코프 신부의 옷가지를 회령의 수녀들이 그에게 보내주었다. 나남의 마지막 베네딕도회 신부는 요셉 쳉글라인 신부였다. 루치오 로트 신부는 1949년 2월에 요셉 신부를 나남에서 덕원 부근의 고원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