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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리본당

평신도 14   성직자 0   수도자 1  
대신리본당

대신리본당 大新里本堂

1934년 평양시 대신리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막달레나. 평양시 관후리(?後里)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어 평양시의 동부지역 및 평남 대동군(大同郡)과 강서군(江西郡)의 일부지역을 관할하며 유서 깊은 논재[畓峴], 고둔[楸斌里], 쑥개[艾浦里] 등의 공소를 포함하여 12개의 공소를 두었다. 창설 당시의 본당명은 선교리(船橋里)본당이었으나 1939년 성당 준공 이후 신리(新里)본당으로 바뀌었고 1944년 다시 대신리 본당으로 바뀌었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가 부임, 1938년 9월까지 사목하면서 성당을 신축하고 6년제 초등학교기관 동평학교(東平學校)를 설립하는 한편 양로원과 보육원을 개설했고, 이어 메리놀회의 듀피(Duffy, 都)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1938년 9월에서 1941년 12월까지,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1942년 2월에서 1944년 4월까지,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4대 주임신부로 1944년 4월에서 11월까지 각각 사목하였다. 그 후 박용옥(朴-玉, 디모테오) 신부가 5대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중 1949년 12월 7일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자 본당도 폐쇄되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했을 때 평양교구 내의 일부 본당이 복구되면서 2대 주임신부였던 듀피 신부가 다시 사목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2월 2일 듀피 신부와 많은 교우들이 월남함으로써 다시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대신리 본당의 심신단체로는 청년들로 조직된 예수성심회, 40세 이상의 여교우들로 조직된 성부 안나회, 40세 이하의 여교우들로 조직된 소화 데레사회, 미혼여성들로 조직된 성모성심회, 남녀중학생으로 조직된 미사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1935년 개설된 나자렛 양로원과 영해 고아원, 1936년 개교한 동평학교 등이 있었다.

- [참고문헌] 평양교구사편찬위원회편, 天主敎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