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북녘본당 소개 > 서울대교구(북녘지역) > 안악본당

안악본당

평신도 15   성직자 0   수도자 2  
안악본당

안악본당 安岳本堂

황해도 안악군 안악면 비석리(黃海道 安岳郡 安岳面 碑石里)에 위치한 이 본당은 1936년 매화동(?花洞)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후의 안악은 황해도에서의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였다. 신천(信川)사람 안중근(安重根, 토마스)의 종제(從弟) 안명근(安明根, 야고보)이 의병자금 모금차 안악에 들어왔다가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데라우찌(寺丙正毅) 총독 암살 음모사건으로 일경에 의해 날조된 이른바 ‘안악 105인사건’에 관련, 안명근 이하 많은 사람이 검거 되었는데, 안명근을 비롯한 주동인물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였다.

안악읍에는 1899년 매화동본당의 우도(Oudot, 吳保祿, 바오로)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공소가 설치되었었다. 1936년 본당 승격과 함께 초대 양덕환(梁德煥,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 이듬해에는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도움과 여러 교우들의 성금으로 일자형(一字形)의 한식 성당과 사제관(2층 양옥)이 신축되었다. 8.15광복 이듬해인 1946년 2대 김경민(金景旻, 루도비코) 신부가 부임,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던 날 새벽에 김 신부는 공산당국에 검거되어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해주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유엔군 북진으로 북괴당국이 후퇴할 때 살해된 것으로 추측됨).

유엔군이 북진하던 그 해 10월 북괴당국의 눈을 피해 은신 중이던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사창(社倉)본당의 김충무(金忠務, 글레멘스) 신부가 월남 도중에 안악본당에 들러서 마지막 목자역할을 대행하다가 그 해 12월 5일경에 서울 피난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