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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련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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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련본당 長連本堂

소재지는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서부리(黃海道 殷栗郡 長連面 西部里). 장련지방을 처음으로 방문한 선교사는 1883년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평안도 · 황해도 지방의 포교를 맡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와넬(Victor Poisnel, 朴道行) 신부였으며, 장련면 금복리(今卜里)에 첫 공소가 개설되었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선교사는 로(Jean Louis Rault, 盧若望) 신부였다. 1887년 입국하여 황해도 고정선교사로 임명, 장련을 포교의 거점으로 삼고 18개월 동안 50여명에게 성세를 주는 수확을 거두면서 구월산(九月山)주위에 4개의 교우촌을 형성시켰다.

그 뒤 장련지방은 안악(安岳)의 매화동(?花洞)본당 관할의 공소가 되었고, 1914년 은율(殷栗)본당이 부활되자 장련지방은 이 본당 관할이 되어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백남희(白南熙, 베드로), 이보환(李普煥, 요셉),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윤의병(尹義炳, 바오로)등 역대 신부들의 지도를 받았다. 장련지방은 1939년 본당으로 독립한 후에도 6년간(1942∼1948년) 신부 배정을 받지 못해 은율본당의 신부가 겸임으로 본당 사제 업무를 맡는 등 모본당인 은율성당과는 30여년간 형제적 공동체 관례를 유지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장련지방 천주교회의 역사는 대부분 공소에서의 역사이며, 독립된 교회로서의 역사는 초대 주임사제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의 재임기간(1939∼1942년)과, 2대 주임사제 신윤철(申允鐵, 베드로)의 재임기간(1948∼1950년)을 합친 5년간에 불과하다.

장련본당

1950년 6월 24일 밤, 6.25전쟁 개시와 함께 신윤철 신부는 장련 내무서로 강제 연행, 구금되었다가 은율본당의 윤의병 신부가 당한 것과 같이 큰 자루 속에 넣어져 해주 수양산(首陽山)으로 끌러가 살해당하였으며, 장련본당은 그 때부터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