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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본당

평신도 19   성직자 0   수도자 2  
송화본당

송화본당 松禾本堂

황해도 송화군 송화면 읍내리에 위치했던 송화본당은 일찍부터 황해도 장연(長淵)본당의 공소였는데, 1939년 본당으로 승격, 강원도 이천(伊川)본당에서 전교하던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2대 이보환(李普煥, 요셉) 신부가 1944년 3월에 강원도 평강(平康)본당으로 전임된 후 6개월 동안은 본당신부가 공석이어서 이웃의 본당신부가 성사를 집전 했으며, 그 당시 송화본당의 신자수는 517명이었다. 그 해의 9월, 평양교구 서포(西浦)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던 서기창(徐起昌, 프란치스코) 신부가 3대 본당신부로 부임해 왔다. 서 신부는 8.15광복 후 공산치하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성당을 군사동원부 건물로서 징발당하였다. 그 해 9월 10일경에서 서 신부는 정치보위부에 연행되었고, 그 10여일 후 유엔군의 북진 때 정치보위부 방공호 속에서 학살당한 서신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때부터 송화본당이 침묵의 성당이 되었다.

-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