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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본당

평신도 12   성직자 0   수도자 2  
안주본당

안주본당 安州本堂

1930년 평남 안주군 안주읍 북문리(平南 安州郡 安州邑 北門里)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안주지역은 1860년대 초 서울에서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영세하고 귀향한 김자당(金子唐, 안토니오)에 의해 최초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김자당을 비롯한 대분의 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천주교의 불모지대가 되었으나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된 후, 1927년 함경남도 나남(羅南)에서 안주 경찰서로 전근해 온 경부(警部, 지금의 總警) 이인근(李仁根, 다테오)과 1928년 영유 본당에서 파견된 전교회장 박정결(朴挺傑, 요셉), 곽 안나 등에 의해 다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 후 교세가 신장함에 따라 1930년 9월 30일 본당으로 창설되어 폐쇄되기까지 평남 안주군 · 박천군(博川郡) · 덕천군(德川郡) · 개천군(价川郡) · 창성군(昌城郡) 일대를 관할하며 4개의 공소를 두었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바론 신부가 부임하여 1937년까지 사목하면서 성당과 사제관을 건축하고 성모학원(聖母學院)과 성모병원(聖母病院)을 개설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캐롤(Carroll, 安)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플런킷(Plunkett, 朴)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각각 사목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반발로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日帝)에 체포되자 1942년 2월부터 1944년 12월까지는 서울교구에서 파견된 신부들이, 1944년 12월부터 1948년 9월까지는 덕원과 연길교구에서 파견된 베네딕토회 신부들이 사목을 담당했고, 1948년 9월 베네딕토회 신부들마저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철수하자 이경호(李京鎬, 안셀모) 신부가 8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50년 6월 24일 6.25동란을 하루 앞두고 이경호 신부가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체포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안주본당의 신심단체로는 부인회, 15세 이상의 미혼녀들로 구성된 미사회, 주일학교회, 가톨릭 운동연맹 지회 및 분회, 교회운영 협의체인 자치위원회 등이 있었고, 본당운영의 사업체로는 1934년 개설된 성모학원, 1935년 개원된 성모병원이 있었다. 그리고 1937년의 교세는 총 교우수 816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