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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본당

평신도 11   성직자 0   수도자 2  
의주본당

의주본당 義州本堂

1911년 평북 의주군 의주읍(平北 義州郡 義州邑)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승천(聖母昇天), 의주는 옛부터 조선과 중국과의 관문(關門)이었던 곳으로, 조선 교회의 밀사들이 북경(北京) 왕래의 통로로 사용했던 곳이며 또한 모방(Maubang,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등이 조선에 입국하여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이곳은 1898년 섶가지[薪枝里]본당 주임 샤플랭(Chaplain, 蔡) 신부와 그의 복사 양덕현(梁德鉉, 힐라리오)에 의해 전교되어 평북지방의 첫 공소로 개설된 후, 1911년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폐쇄되기까지 의주군과 삭주군(朔州郡) 일대에 영삭(寧朔) · 청성진(淸城鎭) · 삭주(朔州) · 수진(水鎭) · 고성(古城) · 송장(松長) 등의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여 의주읍내 남문동(南門洞)에 임시성당을 마련하고 사목하다가 1918년 해성(海星) 유치원, 1924년 해성학원 등을 개설하고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을 초빙하여 교육을 전담시켰다. 그 후 1923년부터 미국 메리놀회가 평안도에 진출하여 평양교구 신설을 준비함에 따라 1924년 서병익 신부는 서울교구로 돌아가고 이후로는 메리놀회 신부들이 본당사목을 담당하게 되었고, 메리놀 수녀회 의주 분원도 설치되어 동(同)회 수녀들에 의해 1926년 시약소, 고아원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일제(日帝)에 체포 구급되고 평양교구가 방인교구로 되자 1942년 강영걸(姜永杰, 바오로) 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인근의 강계(江界) · 중강진(中江鎭) 본당까지 맡아 사목했다. 1943년 4월부터는 김교명(金敎明, 베네딕토) 신부가 강영걸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광복 후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김교명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의주본당의 신심단체로는 가톨릭청년회, 성가대, 부인회, 가톨릭운동연맹 지회 및 분회, 주일학교 등이 있었고, 본당운영 사업체로는 해성유치원, 해성학원, 해성학교, 고아원, 양로원, 시약소 등이 있었다. 1937년 의주본당 교세는 신부 1명, 수녀 3명, 총 교우수 474명, 유급 전교회장 4명, 공소 5개소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