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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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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본당

장연본당 長淵本堂

소재지는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서리(黃海道 長淵郡 長淵邑 西里). 장연본당의 전신은 1898년에 창설된 장연군 낙도면(樂道面)의 두섭[道習洞]본당이다. 본당이 설치되기 전에 두섭 공소는 장연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공소의 하나로, 천주교 박해시대에 제4대 서울교구장 베르뇌(Simeon Berneux, 張敬一, 1854∼1866) 주교가 황해 · 평안도 지방에 전교여행을 다닐 때 이곳에도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준 바 있었다. 1880년에는 뮈텔(Augustin Mutel, 閔德孝, 후에 제8대 서울교구장) 신부와 리우빌(Anatolius Liouville, 柳) 신부가 만주 요동(遼東)에서 뱃길로 장연군 대동만(大同灣) 태탄(苔灘)에 상륙, 리우빌 신부는 극락(極樂)공소로 가고, 뮈텔 신부는 백천(白川)의 돌다리 공소를 거쳐 서울로 잠입, 피신하였었다.

1898년 두섭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경상도에서 전교하던 파이아스(Camillus Pailhasse, 河敬朝) 신부가 초대 본당 사제로 부임하였다. 관할지역은 장연 · 송화(松禾) · 은율(殷栗) · 문화(文化) · 해주(海州) 등지였고, 당시의 교세는 489명이었다. 부임 후 파이아스 신부는 두메산골인 두섭을 떠나 장연읍내로 본당을 옮겼다. 1901년 2대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11년간 본당 사제로 봉직하였다. 김 신부는 한일합방(1910년)을 전후하여 교육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이 고조될 때 장연읍에 경애학교(敬愛學校)를 설립, 관내의 각 교우촌에도 학교 설립을 권장 후원한 결과 두섭공소에 정심학교(淨心學校), 장방골[長芳洞]공소에 장흥학교(長興學校), 문화에 월산학교(月山學校)가 설립되었다.

1911년 김문옥 신부는 경북 김천(金泉)본당으로 전임, 그곳에서 사목하던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3대 본당 사제로 부임하여 한옥 성당을 신축하였다. 1916년 4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17년간 봉직하는 동안 장연본당은 황해도 굴지의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1921년 김 신부와 유지 신자들은 황해도 내 교회학교 교사와 전교회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해우양성회(海友養成會)를 결성, 교우소년들에게 중학정도의 교육을 받도록 성공적으로 도왔다. 한편, 1917년에 진출해 온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경애학교를 6년제 인가를 받게 하여(1925년), 사제 지망생을 다수 양성 · 배출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예비 신학교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케 하였다. 본당에서는 경애학교 유지를 위해 송화군(松禾郡)의 황무지를 개간했고, 청년신자들은 상조회(相助會)를 조직, 자선사업도 전개하였다. 김명제 신부는 그밖에 많은 건축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대규모의 양잠사업과 과수원 경영을 하여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1931년 한국 공의회 참석차 내한한 주일(駐日) 교황사절 무니(Mooney) 대주교가 전국 주요 본당 순방 중 장연본당을 시찰한 바 있었다.

1933년 5월 5일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가 강원도 평강(平康)에서 부임해 온 후 가톨릭 여자청년회가 발족, 문맹퇴치사업으로 야학을 운영하였다. 1934년에는 황해도에서 처음으로 성체거동행사가 장연에서 거행될 때 도내 성직자 15명과 수천 명의 신자가 참여하였다. 1935년 6대 이선용(李善用, 바오로) 신부가 부임, 1937년의 본당 총교세는 1,866명이었다. 7대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신부는 1941년부터 1년간 봉직한 후 전임되고, 1942년 8대 강주회(姜周熙, 방그라시오) 신부가 부임, 일제 말기와 8.15광복 후 공산치하의 어려움 속에서 교회를 이끌어 나갔다. 북한 공산정권은 과수원을 비롯한 수만평의 교회토지를 몰수, 경애학교도 접수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산군 모(某)부대에서 장연본당을 지휘부 건물로 징발하였다. 그 해 10월 백령도(白翎島)근방의 공산군 후퇴부대가 장연을 통과할 때 강 신부의 부친 강재규(베네딕토), 모친 이 아녜스, 누이동생 강 마르티나를 총살하고, 성당, 사제관, 수녀원에 불을 지르고 도주하였다. 그 동안 어느 과수원에 은신하고 있던 강 신부는 그 해 12월 유엔군 후퇴 때 매제(妹弟) 김원식(金元植, 마티아) 외 여러 교우들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월남하였다.

-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