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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본당

평신도 53   성직자 0   수도자 5  
연안본당

연안본당 延安本堂

해주(海州)본당 관할의 공소가 있던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군청소재지 연안읍에 본당이 설정된 것은 1937년 5월로,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충남 서천(舒川)에서 전교하던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만여원의 공사비를 들여 벽돌 성당과 사제관 신축공사를 그해 10월에 완공,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 주례로 준공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1942년 조 신부가 평양교구 안주(安州) 본당으로 전임되자, 연안본당은 성직자 부족으로 후임신부를 배정받지 못해서 해주본당과 개성(開城)본당 관할로 분할 편입되어 있다가, 1943년 경기도 안성(安城)본당에서 사목하던 이희연(李熙淵, 프란치스코) 신부를 3대 본당신부로 맞아 본당이 부활되었다. 그러나 이희연 신부는 1년만에 전임되었으며, 그 당시 연안본당의 총 교세는 711명이었다. 그 후임인 4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가 평양교구 강서(江西)본당으로부터 부임하여 전교하다가 1951년 유엔군의 후퇴 때 그가 돌보던 고아들을 데리고 월남하였다. 김 신부는 경기도 부평(富平)본당 주임으로 재임하면서 이 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설립 운영하는 한편 성모자애병원(聖母慈愛病院)도 설립 운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