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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후리본당

평신도 33   성직자 5   수도자 6  
관후리본당

관후리본당

관후리본당은 1896년 평안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1943년 평양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평양시 대동강 서쪽과 대동군 고평면 지역을 관할하였다. 르 장드르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2대 주임 르 메레신부는 1905년 9월 기명학교(箕明學校)를, 1906년 5월 성모여학교를 개설했으며 1909년 9월에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을 초빙하여 교육과 전교를 전담케 했다. 1923년 1월에는 전교와 자선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성모시잉모태회’(聖母始孕母胎會)를 발족시키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27년 3월 17일 평양 지목구가 신설되면서 평양본당은 평양교구의 중심 본당이 되었고 메리놀회 신부들이 주임 신부로 부임하기 시작하였다. 1929년 3월에는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통합하여 6년제 성모보통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31년 3월에는 평양교구청이 서포(西浦)에 준공됨으로써 본당 내에 있던 교구관리와 재단사무 일체가 새 청사로 이전되었다. 이후 1932년 2월 성로회(聖路會)를 조직하였고 6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고 성당을 증축하였으며, 많은 강연회를 개최하여 평양 일대에 천주교를 널리 소개하였다. 1940년 1월 서평양(西平壤) 일대를 관할하는 기림리(箕林里)본당을 분할시켰다. 같은 해 7월, 관후리본당에서 교육·자선 사업 등을 맡아 오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서울 본원으로 철수하였으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면서 본당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평양교구에 있던 메리놀회 신부 모두가 일제에 체포 구금되었다. 이에 1942년 2월 평양교구장 대리직을 위임받은 홍용호 신부가 본당의 주임을 겸하게 되었다. 홍용호신부가 대목구로 승격한 평양교구의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된 1943년 3월 9일 이후 평양교구의 주교좌 본당이 되었다. 그러나 1944년 2월 일제에 성당과 부속 건물을 징발당하여 산정현(山亭峴)의 장로교 예배당으로 본당을 옮겨야 했다. 해방 후, 1946년 3월, 공산정권과의 교섭 끝에 성당을 다시 찾았고 이듬해 대규모 성당 건축 사업을 시작하여 1948년 말경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1949년 홍용호주교, 본당 주임 김필현신부, 보좌 서운석신부가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납치됨으로써 기능이 정지되었다.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