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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향시본당

평신도 16   성직자 0   수도자 1  
운향시본당

운향시본당 運餉市本堂

1936년 평북 용천군 부라면 동단동(平北 龍川郡 府羅面 東端洞)에 창설되어 1945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용천군 부라면 일대는 1929년 신의주(信義州)본당 주임 페티프런 (Petipren, 邊聖行) 신부가 이 일대의 일본인(日本人)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유랑농민들에게 전교함으로써 첫 복음의 씨가 부려졌다. 그 뒤 전교 1년만인 1930년 비현(枇峴)본당 관할 공소로 개설되고, 이어 비현본당에서 파견된 전교회장이 공소 강당에 상주하면서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보아 1936년 7월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폐쇄되기까지 용천군 일대에 용암포(龍岩浦) · 남시(南市) · 양시(楊市) · 삼룡동(三龍洞) · 북중(北中) · 다사도(多獅島) 등 6개의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비현본당 주임이던 하논(Hannon, 韓綸) 신부가 부임, 성당 · 학교 · 사제관 등을 신축했고,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해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성직자들이 체포 구금되자 1942년 2월 서울교구에서 파견된 심재덕(沈載德, 마르코)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9개월간 사목하였다. 그 후 강영걸(康永杰, 바오로)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1943년 6월에서 1944년 4월까지, 한도준(韓道俊, 마태오) 신부가 4대 주임 신부로 1944년 4월에서 1945년 10월까지 각각 사목했고, 1945년 10월 한도준 신부가 기림리(箕林里)본당으로 전임되고, 후임 신부가 부임하지 못함으로써 운향시본당은 비현본당 공소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공소마저도 1950년 6월 비현본당과 함께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1945년 운향시본당의 총 교우수는 600여명이었고,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는 청년회, 성가대, 부인회 등이 있었으며, 본당에서 운영하던 학교로 영신학원(英新學院)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