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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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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본당

비현본당 枇峴本堂

1911년 평북 의주군 비현면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1900년 망(Meng, 明)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전교된 비현지방은 1905년 이 지방 최초의 영세자 홍서락(洪瑞洛, 토마스)의 집에 공소가 개설된 후, 1911년 뮈텔(Mutel, 閔德孝)주교가 의주군 비현면 산대동(山臺洞)에 성당부지와 사가(私家) 20여간을 마련하고 김윤근(金允根, 요셉) 신부를 파견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1913년 12월 2대 주임신부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부임 7개월만에 황해도 검수(劍水) 본당으로 전임되자 의주(義州) 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되었고 위치도 의주군 비현면 체마동(替馬洞)으로 이전되었다. 그 뒤 1923년 메리놀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평안도 전역에서 사목하여 평양교구 신설을 준비함에 따라 1926년 본당으로 재승격되어 폐쇄되기 전까지 의주군 남동지역, 용천군(龍川郡) 동부지역, 선천군(宣川郡) 일부지역을 관할하며 10개의 공소를 두었다. 1930년 성당을 완공했고, 1933년 학술강습소(1940년, 후일 성심학교로 개칭)를 개설하고 1936년 운향시본당을 분할, 창설시켰다. 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북한 전지역의 교회가 탄압 받는 가운데 1950년 6월 27일 9대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김동철(金東哲, 마르코)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비현본당의 신심단체로는 부인회, 청년회, 소년소녀회, 가톨릭운동연맹 지회 등이 있었고, 간행물로는 1928년 창간된 주보(週報)와 1937년 창간된 청년회지 <새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