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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본당

평신도 43   성직자 0   수도자 11  
이천본당

이천본당 伊川本堂

춘천교구 소속으로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개하리에 소재한 침묵(沈?)의 본당. 강원도 이천에 선교사가 정착한 것은 1892년의 일로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로(Rault, 盧) 신부가 염산리(簾山里)에 정착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의 신자수는 900여명으로 이천에서 산 하나 너머에 있는 신계 · 곡산 지방까지 전교하였다. 그 뒤 뒤테르트르(Dutertre, 姜) 신부가 전교하였고, 1896년에는 이천 포내(浦內) 본당을 분할하였고, 1908년에는 염산리에서 이천읍 내의 개하리(開下里), 속칭 망답(望沓)으로 본당을 이전하는 한편, 그해에 ‘경천애국’(敬天愛國)을 교지(校旨)로 한 명의학교(名義學校)를 설립하였다. 1909년 당시 이천본당은 공소수가 이천군에 20개, 평강군내에 11개 등 총 31개로 늘었고, 신자수도 2,000여명으로 증가하였다. 1915년에는 김윤근(金允根, 요셉) 신부가 황해도에서 부임하여 1925년까지 주임신부로 재직하면서 1919년 28간의 한옥 성당과 20간의 사제관을 신축한 외에도 청년회, 애련회, 루르드회, 소년조배회 등 많은 단체를 조직, 활동하게 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22년 당시 이천 본당의 관할 공소는 이천면에 3개, 용포면(龍浦面)에 3개, 산내면(山內面)에 4개, 학봉면(鶴鳳面)에 2개 등 모두 12개였다. 김 신부의 후임으로 피숑(Pichon, 宋), 이보환(李普煥, 요셉) 신부 등 여러 신부들이 이어졌고, 1928년에는 일시 폐지되었던 이웃 포내본당 지역을 겸하여 관할 한 적도 있다. 이 본당은 교통이 불편한 산간벽지에 위치한 까닭에 교구장의 방문이 없다가 1936년 11월 16일 서울교구장 라리보(Rarribeau, 元) 주교의 사목방문이 이루어져 200여명의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1937년 신자수는 1,220명으로 1939년 4월 25일 춘천지목구가 설정됨에 따라 이에 편입되었으나, 1945년 광복 후 38도선의 설치로 침묵의 본당이 되었으나, 1945년 광복 후 38도선의 설치로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