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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북녘지역)

서울대교구 북녘지역은 분단 이전의 행정체계로 황해도 전체와 개성 등 경기도 북부 일부가 여기에 속한다.
서울대교구 북녘 지역 특히 황해도 지역에 가톨릭 신자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다. 황해도 평산 출신 고광성이 1801년 7월 2일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포졸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비교적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해진 황해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신자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860년대 이덕보(마태오), 이의송(프란치스코) 등이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다.

이후 황해도 지역은 1896년 황해도 전담 선교사로 임명된 빌렘 신부와 당시 황해도 지역의 모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매화동 본당의 신실한 신자 안태훈과 그의 아들 안중근 의사 등의 활발한 전교활동으로 황해도 전역으로 교세가 퍼져나갔다.
이처럼 평신도들의 열심한 활동으로 성장한 서울대교구 북녘지역, 특히 황해도 지역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그 어느 지역 보다 민족의식과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교회를 일구어가고자 하는 자립심이 강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황해도는 1928년에 서울대교구 소속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고 김명제 신부가 초대 감목 대리로 임명되면서 서울 대구 원산 연길 평양교구와 달리 한국인이 자치교구를 이끌어갈 만큼 성장하면서 자치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19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황해도와 개성 등이 북한 공산당 치하에 속하게 되면서 더 이상의 발전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성무 활동과 신앙생활이 어려운 곳이 되고 말았다.

황해도는 산지가 많은 북한에서 유일하게 평야 지대가 많이 있어 쌀농사가 잘되고, 해산물도 풍부해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김구와 안중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이 황해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