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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본당

평신도 135   성직자 2   수도자 9  

개성본당 開城本堂

소재지는 경기도 개성시 동본리(京畿道 開城市 東本里). 본래 서울 약현(藥現, 현 中林洞)본당 공소이던 송도(松都, 開城)공소가 개성 본당으로 독립한 것은 1901년으로, 초대 본당주임은 1900년 한국에 부임한 파리 외방전교회 루블레(Henri Philppe Rouvelet, 黃惠中) 신부였다.그는 우리말과 풍습을 익히기에 힘쓰며 전교활동을 벌였다. 성당이 자리잡은 집은 과거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한 교우의 집으로 ‘은행나무집’이라고도 불렸다.

1909년 루블레 신부는 충남 공주(公州)본당 주임으로 전임되고, 르 장드르(L.G.A. Le Gendre, 루도비코, 崔昌根) 신부가 2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개성본당 관할지역은 개성, 경기도 장단(長湍), 파주(坡州)외 몇 지역과 황해도 백천(白川)이었으며, 공소는 14개, 신자총수는 1,579명이었다. 개성 읍내의 신자수는 188명이었다.

1919년 충남 서산(瑞山)본당에서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가 3대 본당주임으로, 1924년에는 평북 의주(義州)본당에서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4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서 신부는 본당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 4명을 초청하였으며, 이들은 1930년에 철수하였다.

1931년 황해도 곡산(谷山)본당에서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신부가 5대 본당주임으로, 1933년에는 황해도 해주(海州)본당에서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6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신 신부는 1936년 새 성당 신축공사를 착공, 이듬해 축성식을 거행하였는데, 이 때 개성의 교세는 634명이었다.

개성본당

1942년 해주본당에서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가 7대 본당주임으로 부임, 1947년 이곳에서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수녀들과 함께 서울 가회동(嘉會洞)본당 주임으로 부임해가고, 옹진(甕津)본당 주임으로 있던 유봉구(柳鳳九,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8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한지 1개월만에 6.25동란이 일어나자, 유신부는 구사일생으로 월남하고, 개성본당은 침묵의 본당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