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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강진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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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강진본당

중강진본당 中江鎭本堂

1930년 평북 자성군 중강진읍(平北 慈城郡 中江鎭邑)에 창설되어 1941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1927년 신의주(新義州)에서 이사해 온 백 레지나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중강진은 1930년 10월 28일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폐쇄되기까지 평북 자성군 · 후창군(厚昌郡)일대에 자성, 후창, 동흥(東興), 누룩골, 서수덕, 중동 등 6개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스위니(Sweeney, 徐) 신부가 부임하여 2개월간 사목했고 1931년 2월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전교와 교세확장에 주력하여 1933년 강계(江界) 공소를 본당으로 분할 창설시키고 누룩골, 서수덕 등의 공소를 개설시키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어 레이(Ray, 李)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몇 개월간 사목한 후, 1933년 9월 펠로퀸(Peliquin, 白) 4대 주임신부가 부임, 성당과 사제관 신축을 시작하는 한편 빈민아동 교육을 위한 학교를 개설했고, 1935년 2월 클리어리 신부가 5대 주임신부로 재부임하여 미완성이었던 신축성당을 완공하고 구(舊)성당을 수리 개조하여 교리강습소를 개설하였다. 그 후 1938년 카펠(Cappel, 慶) 신부가 6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해 카펠 신부가 평양교구 내의 동료 메리놀회 성직자들과 함께 일제(日帝)당국에 체포되어 중강진본당은 폐쇄되어 의주(義州)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43년 4월 의주본당에서 강계본당으로 이관된 후 공소마저도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강계본당과 함께 폐쇄되었다. 중강진본당의 신심단체로는 부인회가 있었고, 1937년의 본당 현황은 총 신자수 211명, 공소 6개소, 교리강습소 1개소, 전교회장 2명 등이 있었다.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