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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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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본당

곡산본당 谷山本堂

1928년 5월 황해도 곡산에 창설되어 1950년 10월 폐쇄된 서울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소화(少化) 데레사. 곡산은 병인(丙寅)박해때 서흥(瑞興)에 살던 교우 고(高)첨지 부부가 잡혀와 순교한 곳이며, 병인박해 후 평양에서 이주해 온 황천일(黃千一) 일가와 노성구(盧成九, 요한)[黃千一의 사위이며 盧基南 대주교의 부친] 일가가 숨어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한 곳이다. 1878년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체포된 후 이 곳으로 피신해 온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에 의해 복음이 전래된 후 1896년 강원도 이천(伊川)땅에 포내(浦內) 본당이 창설되자 포내본당의 관할지역으로 되었고, 1925년 황해도 수안에 사창(社倉)본당이 창설되자 사창본당 관할지역을 되었다가 1928년 5월 사창본당 주임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신부가 본당을 곡산군의 중심지인 곡산읍으로 옮기면서 곡산본당으로 창설되었다.

박정렬 신부는 곡산본당을 창설하면서 즉시 곡산면 장림리(長林里) 일대의 과수원 1,500평을 매입,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929년 10월 3일 소화 데레사 축일에 축성식을 가졌고, 이어 2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구천우(具天祐, 요셉) 신부는 1931년 5월부터 1941년 10월까지 만 10년 동안 사목하면서 소화 유치원을 개설하고 성당을 증축하는 한편 부인들의 모임인 명도회를 비롯, 가톨릭청년회, 소년회 등 여러 신심단체를 조직하여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3대 주임 강주희(姜周熙, 방그라시오)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 재임시절에는 일제말기의 가중된 교회 탄압으로 본당 발전은 중지상태가 되었고, 광복 이후에도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 탄압은 계속되어 유치원과 성당을 빼앗기게 되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곡산에 진주하자 임충신 신부는 사목보고차 상경했으나 1.4 후퇴로 곡산본당에 귀임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그 후로 곡산본당은 침묵의 본당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