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북녘본당 소개 > 덕원자치수도원구 > 고산본당

고산본당

평신도 14   성직자 0   수도자 8  
고산본당

고산본당 高山本堂

내평(內坪)본당의 후신. 1896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내평리에 창설된 내평본당이 1930년 교통의 요지인 고산역[信高山]으로 이전되면서 고산본당으로 개칭되었다. 고산본당은 1949년 5월11일 본당 주임오트(C. Ott, 吳) 신부가 북한 공산정권에 체포되고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내평본당

▶내평본당
1896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내평리(咸鏡南道 安邊郡 衛益面 內坪里)에 창설된 본당. 주보는 순교자의 모후(母后). 함경남도와 강원도 경계에 위치한 내평본당은 원산본당의 공소로 출발하여 1896년 불라두(T. Bouladoux, 羅亭?)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의 총 교우수는 1,000여명으로 안변군과 강원도 평강, 회양, 강릉 등지를 관할했고, 1898년에는 1,400여명의 교우수에 총 공소수는 20개에 달하였다. 1899년에 불라두 신부가 사망한 후 투르니에(F. Tournier, 杜啓昌)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고, 1909년 뤼카(F. Lucas, 陸嘉恩)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1920년 원산교구가 설정되어 내평본당이 원산교구로 이관될 때까지 11년간 사목하였다. 서울교구에서 원산교구로 이관되었을 때의 총 교우수는 1,076명이었는데 1921년 다페르나스(C. d'Avernas, 羅) 신부가 부임, 수년간 사목하였다. 그 후 1930년 교통이 편리한 고산역(高山驛, 地名은 新高山)으로 본당이 이전되어 이때 본당명도 고산(高山)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포교 성 베네딕토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동(同)회의 수녀들이 본당 내에 시약소를 개설하여 운영했고, 노이기르크(P. Neugirg, 兪)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36년 4월 성당신축을 시작, 이듬해 6월 2,500평의 부지에 건평 122평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노이기르크 신부의 뒤를 이어 오트(C. Ott, 吳)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로트(L. Roth, 洪)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c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되고 이어 5월 11일 본당 주임 오트 신부, 포교 성 베네딕토수녀회 수녀들과 지도신부 다페르나스 신부가 체포되고 성당, 수녀원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고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고산본당 관내에는 14개의 공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