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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본당

평신도 49   성직자 0   수도자 37  
원산본당

원산본당 元山本堂

1887년 함경남도 원산시(咸鏡南道 元山市)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본당. 원산교구 주교좌 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 원산본당은 함경도의 첫 본당으로 1886년 한불조약(韓佛條約)이 체결된 후 선교사들의 자유로운 선교활동에 의해 창설되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드게트(V. Deguette, 崔東鎭)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원산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광석동에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889년 공소순방 중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자 이듬해 5월 마라발(J. Maraval, 徐若瑟)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892년 샤르즈뵈프(S. Chargeboeuf, 宋德望) 신부가 부임, 1894년까지 사목했고 샤르즈뵈프 신부 후임으로 브레(A. Bret, 白類斯) 신부가 부임, 성당기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짓고 성당신축을 준비하던 중 총기오발 사건이 일어나 1895년 브레 신부는 원산을 떠나고 후임으로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가 부임하였다. 베르모렐 신부는 간도지방의 첫 교우인 김영렬(金英烈, 요한)에게 성세 성사를 주어 김영렬로 하여금 간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케 하였다. 1896년 브레 신부가 다시 6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1908년 병사(病死)하자 라리보(A. Larribeau, 元亨根) 신부가 잠시 사목하다가 1910년 프와오(V. Poyaud, 表光東) 신부가 부임, 1920년 원산교구가 설정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20년 8월 5일 원산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에 사우어(B. Sauer, 辛) 주교가 임명되자 원산본당은 원산교구로 이관되고 동시에 주교좌 성당이 되었는데 이때의 총교우수는 268명(한국인 258명, 일본인 10명)이었다. 원산교구로 이관된 후 에카르트(A. Eckardt, 玉) 신부가 부임하여 1921년 빈민아동 교육을 위해 해성(海星)학교를 설립했고, 이어 로트(L. 깨소, 洪) 신부와 시미트(C. Schmid, 金) 신부가 사목을 담당하였다. 1925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원산교구에 진출, 원산교구에 진출, 원산을 근거로 활동하게 되자 동회의 수녀들에 의해 본당내에 야학, 시약소, 노인과 아동을 위한 교리강습소, 해성유치원 등을 개설, 운영하였다. 그 후 1930년 로트 신부가 덕원 베네딕토 수도원 원장으로 전임되자, 담(F. Damm, 卓) 신부가 부임, 1949년 본당이 폐쇄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37년 성당신축이 시작되어 이듬해 대성당이 완공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페르나스(C. d'Avernas, 羅) 신부가 보좌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 주교,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로트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되고, 이어 5월 11일 본당 주임 담 신부, 보좌 노이기르크(P. Neugirg, 兪) 신부가 체포되고 성당을 포함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이후 원산교구의 모든 본당과 함께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원산본당 관내에는 7개의 공소가 있었다.